몇 년 전 이 그림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파일을 저장해 두었습니다. 손에 권총을 든 인물이 문 밖을 단단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문에 총알 자국이 있는걸 보니 이미 한 발을 쏜 것 같고요. 방 안에는 금방이라도 총성이 쏟아질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져요. 우리는 종종 일터를 전쟁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출근하는 마음이 매번 비장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무언가와 싸우러 가는 느낌이긴 한 것 같아요.
누구나 한번쯤 직장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겪게 됩니다. 9년 남짓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오며 저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던 상대방들을 떠올려 봅니다. 저는 스타트업, 대기업, 프리랜서 생활을 경험하며 나름 다양한 환경에서 일해 왔는데요. 모욕감과 수치심을 주는 사람도 있었고, 저를 무조건 싫어하기로 마음 먹은 듯한 사람과도 일해 봤어요. 그 동안 쌓아온 내 커리어를 손쉽게 깔아뭉개는 무례한 사람도 만나 봤습니다. 제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지 마구잡이로 제 기를 꺾으려고 겁을 주던 사람과의 미팅도 기억 나네요. (그리고 저는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날이었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일하는 삶에서 이런 전쟁이 수백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런 상황에 필요한 건 인내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냥 권총이라는 걸요.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좋게 해석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긍정적 환상(Positive illusion)이라고 합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인격을 가졌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인데요. 자존감 유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심해지면 과도한 ‘남 탓'에 빠지게 됩니다.
톰 로벨(Tom Lovell)의 그림 <Shot in the dark>를 보면서 나도 얼마든지 남을 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어졌습니다. 남 탓의 악순환에 빠져 힘들어하기 보다는, 나만의 무기를 잘 벼르고 싶어요. 반격을 날릴 기회는 반드시 올 거니까요.
톰 로벨은 유명한 미술관에 컬렉션이 걸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20세기 미국에서 포스터, 삽화 등을 작업하며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 중 하나라고 해요. 비잉10에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시대와 성격의 작품으로 쉬운 감상을 함께 할게요. 오늘의 아트 테라피 한 조각은 톰 로벨의 <Shot in the dark> 였습니다. 하루 10분, 명상하듯 감상하며 그저 존재(being)해 봅시다. 다음 주에 다른 작품으로 만나요!